아직도 주변에 불행을 떠벌리고 있는가

불행을 반복해서 떠벌리는 일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두운 얼굴로 고통과 억울함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거나 짐이 가벼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불행은 말 속에서 더 생생해지고, 마음속에서 더 큰 현실이 된다.

문제를 붙잡고 바라볼수록 그것은 생각 속에서 자라고, 삶의 중심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람들은 긴 불평과 고난의 이야기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들에겐 이미 각자의 문제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조차도 반복되는 불행의 이야기 앞에서는 점점 지쳐간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위로도 해결도 아닌, 고립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불행을 말로 꺼내는 습관이 당신을 어떤 상태로 만들어 가느냐는 점이다.

이 습관에 빠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불행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 속에서 모욕을 발견하고, 의도 없는 행동에서도 악의를 읽어 내며, 그것을 마음속에서 키워 다시 이야기거리로 꺼내놓는다.

이렇게 생각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면 자기암시와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게 되고, 그에 맞는 기운을 몸에 두르고 다니게 된다.

그 결과 불쾌한 일과 거친 말, 오해와 갈등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모여든다.

싸움을 예상하는 사람은 싸움을 얻게 되고, 무시당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반드시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지배적인 생각은 그와 같은 성질의 사람과 사건을 끌어당긴다.

생각은 결코 혼자 머무르지 않는다.

당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곧 당신의 현실이 된다.

이 습관이 해로운 이유는 그것이 마음과 인격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으며, 그 재료는 하루 동안 품은 생각들이다.

불행과 부당함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마음은 그 방향으로 굳어지고, 모든 사람에게서 최악의 면을 찾게 된다.

그리고 종종 그 모습을 끌어내는 쪽으로 스스로 상황을 몰고 간다.

문제는 퍼뜨리면 잡초처럼 자란다.

불행을 떠벌리는 일은 당신을 구해 주지 않으며, 원치 않는 일을 더 끌어당기고, 마음과 기질, 인격까지도 갉아먹을 뿐이다.

그러니 불행을 말로 키우는 습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믿음은 인간의 모든 일에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은 쉽게 믿으면서도 삶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해서는 신뢰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이미 신뢰 위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기차를 탈 때 우리는 기관사의 얼굴도 능력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 믿고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도 인간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만은 의심한다.

법칙이 자신의 삶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삶 역시 완전히 법칙 아래 있다.

밖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그 흐름은 작동하고 있다.

그 흐름에 거슬러 갈 때 마찰과 고통이 생긴다.

진정한 지혜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데 있다.

흐름을 거슬러 애쓰면 같은 거리도 힘들지만, 그 흐름을 타면 훨씬 수월해진다.

삶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며 멈추지 않는다.

믿음은 맹목이 아니며, 그것은 질서에 대한 신뢰다.

우리의 초조함과 걱정은 대부분 믿음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흐름은 우리가 믿든 말든 계속 작동하고 있다.

그러니 저항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주를 대신 운전하려는 착각을 멈추고, 삶의 법칙을 신뢰해 보아야 한다.

불행을 말로 키우지 말고, 흐름에 몸을 맡겨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흐름과 함께 가라.